산재사건은 감정을 잘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감정신청을 할 때 감정질의사항을 어떻게 구성하느냐, 첨부서류에 무엇을 넣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에 유리한 자료를 최대한 수집한 후에 감정을 진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무상 진료기록감정이라고 하는데요, 산재사건 경험이 많지 않은 변호사님은 무턱대고 의무기록지를 첨부해서 진료기록감정신청을 하시는 분도 있는데요, 좀 안타깝습니다. 진료기록감정이라고 되어 있지만 진료기록뿐만 아니라 각종 사실조회 결과, 증인신문 결과를 첨부해서 감정을 받아야 합니다.
저는 사업장은 물론 산업안전보건연구원, 관할 노동청, 회사에 유기용제를 제공한 협력업체, 주치병원 등에 사실조회신청을 했고, 당시 동료근로자를 증인으로 신문하였습니다. 특히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대한 사실조회를 촘촘하게 진행해서 최대한 유리한 내용을 끌어내기 위해서 애썼습니다. 역학조사서가 불승인처분의 출발점이자 근거이기 때문에 그 내용에 최대한 흠집을 내서 감정을 받을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통상 감정은 한 개의 진료과목에 1회 신청합니다. 뇌혈관질환이라면 신경외과(뇌혈관), 허리 추간판탈출증이라면 정형외과나 신경외과(척추)로 보냅니다. 그런데 이 사건의 경우 2단계에 걸쳐서 감정을 진행했습니다. 먼저 산업안전보건학회에 유해물질평가감정(어떤 유해물질에 얼마나 노출되었는지)을 실시하였고, 다음으로 직업환경의학과에 상당인과관계평가 감정을 실시하였습니다. 유해물질평가감정에서는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역학조사의 문제점과 한계를 인정받는 데에 주력하였고, 직업환경의학과 감정에서는 유해물질평가감정까지 첨부자료로 제출해서 좋은 결과를 이끌어냈습니다.
감정 결과가 좋은 경우에 1심에서 조정으로 끝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재판장이 근로복지공단에게 조정권고를 하고 피고가 조정을 수락하면 끝나는 절차입니다. 조정권고는 유족급여승인처분을 하고 소송비용은 각자 부담하는 내용으로 나옵니다. 행정사건의 경우 일반 민사사건과 달리 공권력행사의 효력에 관하여 다투는 소송이기 때문에 행정기관이 임의로 조정을 수락할 수가 없습니다. 소송업무에 있어서 감독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고등검찰청 검사가 결정합니다. 실무상 거의 100% 수락합니다. 재판장의 조정권고를 수락하지 않으면 100% 원고승으로 결정되기 때문이죠(즉 근로복지공단 패소). 조정으로 끝나면 소송비용 각자 부담이기 때문에 근로복지공단은 조정권고를 수락할 유인이 있는 것입니다.
판결로 이기면 변호사비용으로 440만원, 인지·송달료·감정료 합계 약 150만원, 총 600만원을 받을 수 있기는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기계적으로 항소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소송비용을 포기하더라도 신속하게 유족급여승인처분을 받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하여 우리 원고측은 조정권고를 수락하였습니다.
조정과 관련해서 제 경험을 좀 더 말씀드리면, 근로복지공단은 1심에서 패소하면 무조건 항소해서 항소심에서 조정권고를 유도해서 소송비용 각자 부담으로 끝내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재판부는 조정으로 끝나면 판결문 작성 부담이 없기 때문에 조정을 선호하기 마련이죠. 저는 ‘소송비용 피고 부담’으로 조정을 받아낸 적이 한 번 있습니다.
소송마다 승패의 분기점이 있습니다. 이 사건을 승소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업주에 대한 사실조회 과정에서 기판 생산량 자료를 입수하였기 때문입니다. 역학조사서를 보니 기판을 자르는 기계가 8대가 있었는데 역학조사 당시에는 1대만 작동되고 있었습니다. 회사가 역학조사에 대비하여 1대만 작동시킨 건 아니고 해당 기판의 수요가 급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벤젠이나 포름알데히드는 기판을 여러 조각으로 자를 때 열이 발생하는 과정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생산량이 많아질수록 유해물질이 더 많이 나올 것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회사에 대하여 망인이 입사한 2005년부터 역학조사 당시까지 생산량이 표시된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청하였던 것입니다. 다행히 회사가 순순히 자료를 내주었습니다. 회사측은 그 자료가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지 모르고 내주었을 것입니다.